[설교] 흉년의 땅에 소망의 씨앗을 뿌려라 - 시126
시편 126:1-6
126:1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126:2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그 때에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
126:3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126:4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려보내소서
126:5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126:6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함께 인사하겠습니다. “잘 되고 있습니다. 기도하면 됩니다.”
매년 연말이 되면 가장 많이 들리는 노래가 바로 ‘베토벤 교향곡 9번 4악장 환희의 송가’가 아닐까합니다. 이 곡은 베토벤이 청력을 완전히 잃고 청각장애인이 될 무렵 작곡한 그의 마지막 교향곡으로, 1824년에 완성되었습니다. 명성 있는 작곡가의 교향곡으로는 처음으로 성악을 기악과 같은 비중으로 도입한 작품입니다. “합창 교향곡”이라는 별명이 붙은 것은 바로 4악장에 나오는 합창(및 독창) 때문이며 그 가사는 프리드리히 쉴러의 환희의 송가에서 따온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찬송가 64장 기뻐하며 경배하세로 더 친근합니다. 우리가 부르는 찬송가 64장은 1824년 베토벤이 작곡한 교향곡 9번에 미국의 작가이자 성직자인 헨리 반 다이크가 1907년 가사를 붙인 곡입니다. 교향곡9번 ‘합창’은 베토벤의 작품들은 물론 서양 고전 음악 전체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 가운데 하나로 손꼽힙니다. 또한 현재 유네스코의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베토벤 교향곡 9번 4악장이 왜 다른 곡들보다 더 많을 사랑을 받고 있을까요?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한 가지가 베토벤이 청력을 잃은 상태에서 작곡한 곡이기에 더 사랑 받고 있는 게 아닐까합니다.
고난을 이겨낸 승리의 노래, 아픔을 딛고 일어서서 부르는 기쁨의 노래! 멋지지 않습니까?
오늘 함께 나눈 시편 126편이 바로 이런 환희의 송가이자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고백이며 감사의 노래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갔다가 돌아와 예배를 드리러 성전에 올라가며 부르는 이 찬양 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 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포로를 돌려 보낸다’로 옮긴 히브리어 표현은 또한 ‘운명을 바꾼다’를 뜻할 수 있습니다. 4절 말씀의 남방 시내처럼 하나님의 도우심은 바싹 마른 광야 시내가의 바닥이 우기의 물로 순식간에 가득 차게 되듯이 갑자기 닥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포로된 우리의 운명을 바꾸실 때 우리는 꿈을 꾸는 것 같았다’는 히브리 백성들의 고백이 오늘 이 자리에 있는 우리의 고백이 되길 소망합니다.
살아가면서 항상 풍년만 있으면 좋겠는데 이 세상은 그렇지를 못합니다. 예기치 못한 흉년이 사람들을 무척이나 힘들게 만듭니다. 누구에게는 경제적 흉년이 찾아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돈이 마르고, 먹을 것이 떨어지고, 해야 할 것들을 못할 때가 있습니다. 또 다른 이에게는 질병이라는 흉년을 만나게 됩니다. 그렇게 건강하게 장수할 것 같은데 갑자기 예고도 없이 질병이 불쑥 찾아와 자신을 초라하게 만듭니다. 그런가 하면 인간관계에서도 흉년을 만납니다. 금슬이 좋던 부부 사이에 어느 순간 찬바람이 매섭게 몰아칩니다. 내가 믿고 신뢰하던 사람에게서 배신을 당해 지울 수 없는 커다란 상처를 가슴에 새기게 됩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영적 흉년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뜨겁게 하나님과 교제하던 마음이 언젠가부터 싸늘한 마음으로 변해 기도하기도 싫어지고 봉사하기도 싫어지고 심지어는 교회 가기도 싫어질 때가 있습니다.
오늘의 찬양예배는 유치부주관예배로 드리고 있으니까 교회학교적인 상황으로도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한국 교회적으로는 다음세대의 미래가 안 보이는 상황이라고 비관적으로 말씀하시는 분도 계십니다. 국민일보 2011년 2월 7일자를 보면 한국교회 떠나는 청년들이라는 제목의 기사에 한국교회의 위기라고 전제하며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의 청년이 위기다. 이는 곧 ‘한국교회가 위기다’라는 말과 같다. 청년 크리스천의 감소 추세를 방치해서는 한국 교회의 빠른 노령화를 막을 수 없다. 유럽 교회의 전철을 밟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교단 및 교회들이 위기를 알면서도 피상적으로 대응할 뿐 진정한 관심이 없다는 점이다. …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한국교회에서 청년 비중은 5% 안팎인 것으로 추정된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교단 내 청년·대학부 인원은 2009년 말 기준 16만2786명으로 전체의 5.8%다. … 한국대학생선교회(CCC) 젊은 간사들에게 “중·고등부에서 함께 활동한 또래 중 지금까지 신앙을 유지하는 사람 비율”을 물어봤다. 한 명은 20∼30%, 나머지는 공통적으로 30∼40%라고 답했다. 열에 일곱의 청년들이 20대를 거치며 교회를 떠나고 있다는 뜻이다.
유치부는 청년 크리스천과 가장 관계가 깊은 교육부서입니다. 청년 크리스천이 결혼 후에도 계속 신앙생활을 지속할 수 있게 도움을 주며, 믿음의 대를 이을 새로운 청년 크리스천이 될 유아들을 양육하고 교육하는 부서이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한국교회 청년의 위기가 한국교회 유치부의 위기이기도합니다.
현재는 개인적으로나 교회적으로 흉년의 때입니다. 이 흉년의 때를 어떻게 지혜롭게 지나 기쁨의 단을 거둘지 말씀을 통해 함께 은혜받길 소망합니다.
성경에서 어려움을 만났으나 하나님을 의지해서 회복을 누린 여러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브라함, 야곱, 요셉, 모세, 다윗, 느헤미야, 베드로, 바울…. 그러나 이들보다 더 우리와 가장 비슷한 인물로 흉년을 만났지만 흉년을 통해 풍년의 은혜를 입은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이름부터 풍년을 느끼게 만드는 ‘이삭’입니다. 물론 히브리어의 뜻은 ‘웃음’입니다.
창세기 26장 1절을 보면 아브라함이 만났던 흉년을 이삭도 만났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매 이삭이 그랄로 가서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이르렀더니
이삭이 만난 흉년은 일상적인 가뭄이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약속의 땅을 등지고 애굽으로 가야했을 만큼의 절박한 흉년이었습니다.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이나 다른 유목민들처럼 나일강이 흐르는 애굽으로 가 흉년을 피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가족들과 함께 애굽으로 향하였습니다. 애굽으로 향하던 길에 들렀던 곳이 블레셋 땅 그랄이었습니다.
몸은 흉년을 피해 애굽으로 향하고 있지만, 이삭의 마음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신 약속의 땅에 있었습니다. 이삭은 애굽으로 가면서 계속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계속 기도했습니다. 이삭의 기도 내용은 이랬을 것입니다.
전능하신 아브라함의 하나님 흉년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하나님! 약속의 땅을 버릴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종들 그리고 짐승들까지 흉년으로 인해 너무나 고통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 어찌해야합니까?
이삭은 브엘세바를 떠나기 전부터 계속 기도했습니다. 브엘세바를 떠나 애굽을 향하면서도 계속 기도했습니다. 이삭의 기도를 듣고 계시던 하나님께서 마침내 이삭이 그랄 땅에 도착했을 때 기도의 응답을 주셨습니다.
창세기 26장 2~5절입니다.
2.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 3. 이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4.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5.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응답은 ‘애굽으로 가지 말라’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강제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땅에 거류하면 이라 말씀하시며 선택을 이삭에게 맡기셨습니다. 이삭에게는 이제 흉년을 피할 두 가지 방법이 생겼습니다. 하나의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해서 애굽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멈추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세상 사람들의 방법인 애굽으로 향해 흉년을 피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같으시면 어떤 방법을 선택하시겠습니까? 하나는 흉년의 고통을 온 몸으로 맞아들이는 바보 같은 행동이고, 다른 하나는 세상 시류를 따르는 지혜로운 행동입니다.
8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한국의 슈바이처 장기려 박사는 아름다운 일화를 많이 남겼습니다. 어느 해 정월 초하룻날, 아침 일찍 박사 곁에서 자고 일어난 애제자가 잠자리를 정돈하고 먼저 세배를 올렸습니다. 장기려 박사는 따뜻한 미소를 머금고 덕담을 해주었습니다. “금년엔 날 좀 닮아서 살아보아.” 스승의 큰 사랑에 어리광을 잘 부리던 제자가 재롱삼아 말을 받았습니다. “선생님 닮아 살면 바보 되게요.” 그러자 장기려 박사는 껄껄껄 웃으며 다음과 같이 토를 달았다고 합니다. “그렇지, 바보소리 들으면 성공한 거야. 바보로 살기가 얼마나 어려운 줄 아나?” 혹여 세상 사람들에게는 늘 불쌍한 환자들에게 무료진료를 해주던 장기려 박사를 ‘저 사람 바보 아야?’ 하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가난한 사람에게 먹을 것을 퍼주던 그에게 내심 ‘이상한 사람’이라고 빈정거렸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장기려 박사는 바보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바보로 살기’로 작정했던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춘원 이광수 선생도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을 때 담당 레지던트였던 장기려 박사를 가리켜 ‘당신은 바보 아니면 성자’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삭은 애굽을 향하던 발걸음을 그랄에서 멈췄습니다. 세상의 방법을 따르기를 거부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삭은 바보가 되기로 결정했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을 선택한 이삭은 그랄 땅에서 하나님의 맹세를 의지하여 흉년을 지내기로 결정했습니다. 바로 이때 이삭은 선택한 것만이 아닌 행동으로 자신의 결정을 지켜나가기로 합니다.
시편 126편 5절의 말씀을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행동으로 실천합니다. 눈물의 씨앗을 뿌리는 행동을 합니다. 말씀을 붙들고 앉아있기만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고 하용조 목사님의 「기도로 돌파하라」 중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실력만 강조하는 사람은 대개 믿음은 약하기 마련입니다. 세상에서 잘나가는 사람은 너무 바빠서 하나님을 믿을 시간이 없습니다. 또 믿음만 강조하는 사람은 실력이 없을 수 있습니다. 그냥 "주여 믿습니다"만 외칠 뿐 현실을 헤쳐 나가는 능력과 기술이 없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은 실력도 있고, 국정도 다스리고, 나라도 다스리고, 기업도 다스리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이삭은 결단과 행동, 실력과 믿음의 관계를 잘 알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이삭은 그랄 땅에서 눈물의 씨앗, 바로 소망의 씨앗을 뿌립니다. 흉년의 때에 누구도 먹을 곡식 한 톨을 아끼는 때에, 자신이 가진 씨앗을 바싹 말라있는 땅에 씨앗을 뿌립니다. 자신의 생명을 뿌립니다. 자신의 물질을 뿌립니다.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수군거림을 등으로 들으며 자신의 믿음을 뿌립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뿌립니다.
독일에서는 고학생들 중에 노래를 잘하는 학생들은 남의 집 앞에서 노래를 불러 돈을 받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루터가 부잣집 창문 아래서 큰 소리로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런데 노래를 시작하자마자 체격이 크고 무섭게 생긴 사나이가 창문을 열고 뛰어나오는 것이었습니다. 루터는 그 험상궂게 생긴 사나이가 주먹질이라도 할 줄 알고 도망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사나이는 계속 쫓아왔고 붙잡히게 됐습니다. 공포에 벌벌 떨고 있는 루터에게 그 사람은 주먹이 아닌 돈 뭉치를 내밀었습니다. 장학금을 주려는 따뜻한 마음의 자선가였던 것이었습니다. 루터는 그때를 회고하면서
“두려움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세상만사가 모두 걱정과 염려로 가득 차 있고, 믿음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세상이 감사하고 좋게 보이며, 하나님의 손길이 보인다”
고 했습니다. 우리가 환경을 어떤 눈으로 보느냐에 따라서 해석이 다르고, 그 해석에 따라 삶이 행복하게 느껴질 수도, 불행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고난은 두려움의 눈으로 보면 나를 파멸케 하는 것이지만, 믿음의 눈으로 보면 나를 값지게 하는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이삭은 유목민이었습니다. 소와 양, 염소를 돌보던 사람이었습니다. 유목민이 농사를 짓는 것 말처럼 쉽지만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삭은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하며, 순종하고 지키기 위해 말씀하신 땅에서 농사를 짓습니다. 창세기 26장 12절은 짧게 ‘그 땅에서 농사를 하여’라고 말씀하시지만 이삭에게는 쉽지 않은 길이었습니다. 하지만 바보이삭은 믿음의 삶을 걸어갔습니다. 외로워 보이는 바보이삭의 길은 외로운 길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하나님 홀로 이루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함께 이루어 가시길 좋아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하신 언약을 이삭과도 하시길 원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 내리신 복을 이삭에게도 내려주고 싶으셨던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된 것처럼 이삭도 믿음의 조상이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흉년은, 고난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우리로서는 결단의 시간이며, 하나님께는 복 주시는 시작의 때이며, 자신의 꾀로 살아가는 피곤한 인생들에게 하나님과 동행함의 기쁨을 증거 하는 시간인 것입니다.
엔도 슈사쿠의 회상이라는 책을 보면 이런 글이 있습니다.
‘코이’라는 잉어가 있다. 이 잉어가 사는 모습을 보면 참 신기하다. 사는 공간에 따라 크기가 달라진다. 작은 어항에 넣어두면 5~8센티미터 밖에 자라지 않고, 아주 커다란 수족관이나 연못에 넣어두면 15~25센티미터까지 자란다. 그리고 강물에 방류하면 90~120센티미터까지도 성장한다. 우리의 꿈도 똑같다. 큰 꿈을 가진 사람은 훗날 큰 사람이 되고 작은 꿈울 품으면 작은 사람이 된다. 명심하라, 꿈의 넓이가 사람의 넓이이고 인생의 넓이이자 미래의 넓이이다.
다시 말씀 드리지만 흉년은 믿는 자에게 주시는 인생의 넓이이자, 미래의 넓이인 것입니다.
시편 126편 6절은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반드시 기쁨의 단을 얻어 돌아온다고 약속하고 계십니다.
이삭은 창세기 26장 12~14절에
12.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13.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14.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종이 심히 많으므로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
이삭은 그랄 땅에 올 때 이방인으로 아무 영향력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오히려 눈치와 편견, 따돌림을 걱정해야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바로 이런 이삭을 하나님께서는 언약대로 붙드셨습니다. 조롱과 경멸, 멸시의 자리에서 부러움의 자리로 이삭의 자리를 옮겨주셨습니다. 이삭이 스스로 이 자리를 옮길 수 있었을까요? 절대로 이삭 스스로는 바꿀 수 없었습니다. 이 결단의 이야기가 성경의 이야기이기만 할까요?
현재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은 스티브 잡스도 빌 게이츠도 오바마도 아니라고 합니다. 현재 모든 인터넷 조회 수, 클릭 수의 기록을 갈아엎은 인물, 요한복음 3장 16장의 전도사, 바로 “팀 티보우”입니다.
미국 미식축구 덴버 브롱크스의 쿼터백 팀 티보우는 필리핀 선교사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어머니가 임신 초기에 아메바성 감염으로 목숨이 위태로워지자 의사가 낙태를 권고했지만, 목숨을 걸고 티보우를 낳았습니다. 기적적으로 선교사의 가정에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홈스쿨링으로 공부했던 팀 티보우는 동네 미식축구에서 두각을 나타낸 결과 대학 미식축구까지 진출하게 되었습니다.
2012년 1월 8일 피츠버그 스틸러스와의 경기, 4쿼터까지 치열한 접전 끝에 23대 23으로 경기가 끝나고 연장전이 시작되자, 티보우는 연장 11초 만에 극적인 역전 터치다운을 이뤄내고 맙니다. 그것도 전문가들이 그의 약점이라고 판단했던 패싱으로 말입니다. 동료가 뒤엉켜 환호하는 가운데 티보우는 한 편에서 조용히 기도를 올렸습니다. 이 경기 기록을 보면 재미있는 점이 있는데, 티보우가 열 번의 패스에서 기록한 총 패싱 거리는 316야드였고, 리서치 결과 이날 이 경기의 시청률이 31.6%였다고 합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 아이패치에 쓸 수 없었던 하나님의 사랑을 그라운드의 경기를 통해 하나님께서 써 주셨던 것입니다.
이날 경기 후 새로운 기록이 세워졌는데, 구글의 이 날 ‘요 3:16’의 검색 수가 1억 2천 번을 넘었다고 합니다. 이 경기 이후 ‘티보잉’은 삽시간에 온 세계로 퍼져 나가 플래시몹의 형태도 수많은 ‘따라 하기’ 사진들이 올라오게 되었습니다. 티보잉 닷컴이라는 웹사이트도 개설되어 전세계의 네티즌들이 자신의 기도장면을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헬기 조종사로부터 유명 여배우, 아프리카의 원주민 등 수많은 사람이 서프보드 위, 비행기 안, 학교 교실 등 장소를 불문하고 티보잉을 따라 했습니다. 지금도 새로운 사진이 1시간에 2-3건꼴로 올라오고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열풍으로 ‘티보잉’이라는 말이 신조어로 영어사전에 등재되었는데, 그 뜻은 “주변이 어수선해도 기도에 열중하다.”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티보우는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이 당신의 사랑하는 이에게 단 한 번이 아닌 기회가 생길 때마다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저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주님께 사랑을 고백하며 주님을 자랑할 것입니다.”
댈러스 카우보이스의 쿼터백 토니 로모는 그를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하늘이 돕는 선수를 막아낼 방도가 없지 않은가.”
인생에 흉년이 들이닥칩니다. 아무런 준비를 하지 못했을 때, 바로 그때가 주님의 시간임을 기억하십시오. 내가 어찌 할 수 없는 그때가 하나님과 동행해야하는 시간임을 기억하십시오. 위기의 때가 하나님을 찾아야하는 때임을 기억하십시오. 메마르고 거친 흉년의 땅이지만 눈물의 씨앗을 뿌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흉년을 당한 심령에게 말씀하십니다.
시편 126편입니다.
3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5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6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그렇습니다.
세상이 감당치도 못하고, 세상이 이해하지도 못하고, 세상을 이기도 살아가는 삶이 있습니다. 흉년의 땅에 소망의 씨앗을 뿌리는 믿음의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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